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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마스터와 컴퓨터 -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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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마스터와 컴퓨터 -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

koreasgm 2011. 11. 4. 00:44

http://zninldn.wordpress.com/2010/02/07/%ec%b2%b4%ec%8a%a4-%eb%a7%88%ec%8a%a4%ed%84%b0%ec%99%80-%ec%bb%b4%ed%93%a8%ed%84%b0the-chess-master-and-the-computer-%e2%80%93-%ea%b2%8c%eb%a6%ac-%ec%b9%b4%ec%8a%a4%ed%8c%8c%eb%a1%9c%ed%94%84garry/#comment-13

이거 누가 쓴 글이죠? 제가 아는 체스인이 쓴 글인가??

혹시 누가 쓴글인지 알면 리플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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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마스터와 컴퓨터(The Chess Master and the Computer) –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

아래는 The New York Review of Book에 전설적인 그랜드마스터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가 쓴 서평입니다. 리뷰된 책은 Diego Rasskin-Gutman이라는 작가의 “Chess Metaphors: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Human Mind”입니다(굳이 따지자면 카스파로프는 책 자체에 그다지 우호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데 이 글은 서평으로 읽기보다는 카스파로프가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체스에 미친 영향에 대해 쓴 에세이로 읽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한때 인류를 대표해 기계와 실력을 겨뤘던 사람답게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잘 알지 못했던 프로페셔널 체스의 세계를 살짝 들여다보는 것 또한 흥미진진합니다. 꽤 긴 글이지만 게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술술 읽힐 것 같습니다. 역자주는 [] 안에 표시했습니다. 전문용어 번역에 도움을 주신 @heterosis님과 @QuovadisKorea님께 감사드립니다.

체스 마스터와 컴퓨터(The Chess Master and the Computer) –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

1985년 함부르그에서 나는 32대의 서로 다른 컴퓨터와 동시대국으로 체스 시합을 한 적이 있다. 5시간이 넘도록 이 컴퓨터에서 저 컴퓨터로 이동하면서 한 수씩 두었다. 당시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계에서 가장 앞선 4군데 회사에서 자신들의 최신 모델을 내보냈었다. 그 중 Saitek이라는 회사에서 내보낸 8대는 심지어 내 이름을 따서 Kasparov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내가 32전 32승으로 완벽한 승리를 했음에도 별로 놀라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면 85년에 컴퓨터의 체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불편한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시대국 도중, 하필이면 내 이름을 따서 만든 Kasparov 모델 중 한 대와의 경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내 이름이 붙은 기계가 나를 상대로 이긴다거나, 심지어 무승부라도 기록한다면 아마 PR을 위해 내가 일부러 게임을 포기했다는 비난이 금새 뒤따를 터였다. 더욱 더 기를 쓰고 게임에 집중했다. 결국에는 컴퓨터가 거부할 수 없는 미끼를 내주고 함정을 파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아니 적어도 내 관점에서 보면 그 시절이야말로 인간 대 컴퓨터 체스 경기에서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그 때로부터 11년이 지나서 나는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를 가까스로 이겼다. 그리고 1997년, IBM은 두 배의 노력을 쏟아부었고, 딥 블루(Deep Blue)의 처리능력 또한 두 배가 됐으며, 나는 전 세계 헤드라인을 장식한 패배의 주인공이 됐다. 경기결과를 전능한 컴퓨터에게 인간이 굴복하고 말았다는 상징으로 읽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놀랍고 슬픈 소식이었다(뉴스위크 헤드라인은 “두뇌의 배수진/The Brain’s Last Stand였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인간이 (97년즈음에는 이미 서구세계 모든 이들의 책상 위에 한 대씩 놓여 있었던) 컴퓨터의 연산 능력과 아직까지 대결이 된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워했다.

이 패배의 결과를 좀 더 섬세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전문가들, 그러니까 체스선수들과 프로그래머, 그리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팬들 뿐이었다. 체스 그랜드마스터들은, 비록 그 당시에는 제한된 몇몇 게임 상황에서 뿐이었지만, 전능한 신과 같은 능력으로 체스를 둘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어렴붙이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컴퓨터 체스 관계자들은 컴퓨터 사이언스의 오랜, 가장 성스러운 목표 중 하나가 마침내 정복된 데에 언론의 호들갑과 별로 다를 바 없는 환호를 보냈다. 몬티 뉴본(Monty Newborn)의 2003년 작 “딥 블루(Deep Blue)”는 이 승리를 다음과 같은 선에 놓았다: “보기 드문,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든 승리: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 혹은 나사(NASA)의 달 착륙과 비견할 만..”

인공지능 연구자들 역시 결과와 그에 따른 관심을 두고 기뻐하기는 했지만, 딥 블루(Deep Blue)가 초기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꿈꿨던 바로 그 방식으로 인간 챔피언을 물리치지는 못했다는 점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기도 했다. 사람처럼 창의력과 직관을 통해 사고하고 체스를 두는 컴퓨터 대신, 인간을 물리친 컴퓨터는 1초에 앞으로 가능한 200만가지의 수를 분석하고 무식하다시피 한 계산 능력을 바탕으로 승리를 쟁취한 기계가 등장한 것이다. 영국 출신 인공지능/신경망 컴퓨터의 선구자인 이고르 알렉산더(Igor Aleksander)가 그의 2000년 작 저서 “정신을 만드는 법(How to build mind)”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60년대에 비해 컴퓨터 사용 경험이 있는 사람의 숫자가 몇 단위 더(many orders of magnitude) 늘어났다.이 사람들은 카스파로프의 패배에서 프로그래머들의 승리를 읽었다. 하지만 이 승리는 마치 두뇌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일상을 도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물론 [딥 블루(Deep Blue)의 승리는] 인상적인 업적이었고, 또한 사실은 IBM 팀에 속한 “사람들”의 업적이었다. 하지만 딥 블루(Deep Blue)의 지능이란 프로그램 가능한 알람 시계가 가진 지능과 아무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10만불짜리 알람 시계한테 진 내 기분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딥 블루(Deep Blue)와 재승부를 원했던 나의 바람은 불행히도 무너지고 말았다. IBM은 자신들이 원하든 홍보효과를 이미 거뒀기 때문에 아쉬울 게 없었고, 재빨리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세계 각국의 다른 컴퓨터 체스 팀들도 더 이상 스폰서를 받지 못하게 됐다. 나 자신이 98년에 좀 더 준비를 잘 해서 딥 블루(Deep Blue)와 다시 승부를 겨뤄보고 싶기는 했지만, 사실 컴퓨터가 체스에 있어 인간을 누르리라는 것은 이미 시간 문제였다. 요즘에는 50불만 주면 대부분의 그랜드마스터들을 간단히 물리칠 수 있는 실력의 프로그램을 구입할 수 있다. 2003년에 시판되는 멀티프로세서를 이용한 서버에서 이런 류의 프로그램 2개와 한 번에 한 게임씩 둔 적이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최종 점수는 1승1패 무승부 혹은 2무 무승부였다.

예고된 수순이었던 아니건 간에, 그랜드마스터를 능가하는 프로그램을 무릎 위 랩탑에서 실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떤 파급력을 가질지 – 특히 프로 체스선수들에게 – 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기계가 인간을 능가한 바에야 사람들이 더 이상 체스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이, 특히 내가 딥 블루(Deep Blue)에게 패배한 뒤로는 많이 쏟아져나왔다. 이런 시나리오에 대해 어떤 이들은 “자동차나 자전거가 나왔다고 해서 육상경기를 그만두지는 않지 않느냐”라고 응수했는데, 자동차가 사람이 더 빨리 달리도록 도와주지는 못하는 반명 컴퓨터는 인간이 두는 체스의 질(quality)에 분명한 영향을 미쳤으므로 이것은 잘못된 비유라고 해야겠다.

다른 이들은 체스가 풀릴 것이라고[would be solved], 그러니까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컴퓨터의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수학적으로 완결된 방법이 찾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혹은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두어진 체스 경기는 언제나 무승부로 끝난다는 증명을 해내거나). 혹 HAL9000이 실제로 만들어진다면 첫 수를 두면서 “e4, 3만8천4백8십4수 뒤에 체크메이트”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우울한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않을 것이다. 체스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기술로도 완전히 풀어버리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종종 업신여김을 받는 체스의 사촌 체커(혹은 draught)의 운명은 최근 이 우울한 결론을 따르고 말았다: University of Alberta의 조나단 섀퍼(Jonathan Schaeffer)와 그가 만든 프로그램 쉬누크(Chinook) 덕분에.

규칙에 따라 가능한 체스판 위의 모든 경우의 수는 10의 40승, 가능한 모든 게임의 수는 10의 120승이다. 여러 작가들이 이 숫자들이 대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부분은 이 정도의 숫자를 늘상 다루는 다른 분야, 그러니까 천문학을 빌려서 시도하곤 한다. 디에고 라스킨-거트만(Diego Rasskin-Gutman)의 책 “체스의 비유(Chess Metaphors)”를 보면 8수 앞을 읽는 체스선수는 이미 우리 은하에 있는 별 숫자만큼의 경우의 수를 다루고 있다고 적는다. 또 다른 중요한 숫자 역시 라스킨-거트만에 의해 인용되는데, 뭔가하면 가능한 모든 체스 경기의 경우의 수는 온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갯수만큼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교들을 보고 있자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억지 계산력(brute-force computer calculation)을 통해 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보드게임을 “풀어버릴 수”는 없다는 점이 이해가 된다. 물론 이 숫자들은 사람들에게 체스가 얼마나 복잡한 게임인지를 강조하고 싶을 때도 유용하다. 그다지 수학적으로 정교한 방법은 아니지만 나도 몇 번 써먹은 적이 있다.

이 천문학적인 스케일은 체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이들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개발자들은 처음부터 체스라는 게임을 푸는 것 – 증명가능하게 승리가 보장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 은 그들에게 주어진 컴퓨팅 파워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무언가 다른 지름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인즉 최초의 체스 프로그램은 전설적인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에 의해 1952년에 만들어졌는데, 그는 심지어 컴퓨터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튜링은 종이 위에다 자신이 제안한 알고리즘을 실행했고 종이로 된 이 체스 프로그램은 녹녹치 않은 실력을 발휘했다.

라스킨-거트만의 책은 이 잘 알려진 분야를 소개하며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개괄의 개괄이라 할만한 목표를 달성해낸다. 두뇌 기능에 대한 연구를 다루는 첫 번째 장은 대충 넘겨버리고 싶은 유혹이 들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생물시간에 배운 축색돌기니 수지상 조직이니 하는 것들이 생각나시려나 모르겠다. 또한 우리는 첫 장에서 콜린효능성 조직이며 아민능계통(aminergic system), 그 밖에 내 컴퓨터에 설치된 인공지능 철자검색기가 무슨 단어인지 모르는 많은 용어들에 대해서 배운다 (작가도 다시 설명해주지 않는다).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비슷비슷한 수준으로 인공지능, 체스 컴퓨터 그리고 인간은 체스를 어떻게 두는지에 대해 결정적이지는 못할지 몰라도 간략한 소개가 계속된다.

강력한 체스 프로그램의 빠른 보급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예기치않은 많은 결과를 가져왔다. 아이들은 컴퓨터를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컴퓨터를 이용한 체스 역시 금새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강력한 소프트웨어 덕분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대가의 지도를 받는 대신에 자기 집에서 최고 수준의 상대와의 대국을 갖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체스 강국이 아니었고 지도자도 별로 없었던 나라들이 이제는 체스 신동을 배출하곤 한다. 실은 나도 그 중 하나를 올해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체스의 인기가 낮은 노르웨이 출신의 19세 청년 마그누스 칼센(Magnus Carlsen)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경기 분석이 널리 이용되면서 체스 경기 자체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기계는 스타일, 패턴, 그리고 지난 수백년간 누적된 이론을 깡그리 무시한다. 단지 각 말에 가치를 매기고, 수십억 개의 수를 가정한 다음 다시 한 번 말의 가치를 계산하는 작업을 반복할 뿐이다 (컴퓨터는 각각의 체스 말이 가지는 잠재력을 숫자로 변환함으로써 체스 경기를 숫자놀음으로 치환한다). 컴퓨터는 어떤 편견이나 교리에도 얽메이지 않는데, 따라서 이런 컴퓨터를 통해 체스를 연습한 선수들 역시 이러한 편견이나 교리로부터 거의 자유롭다. 체스의 한 수를 두고 점점 더 어떤 스타일로 보이기 때문에 좋다던가 이전에 한 번도 누가 그렇게 둔 적이 없기 때문에 나쁘다던가 하는 식의 평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효과적인 한 수이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나쁘다. 체스 경기에는 여전히 직관과 논리가 필요하지만, 오늘날 인간은 오히려 기계가 두듯이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

또한 수백만 게임의 복기 자료가 손끝에 주어짐에 따라 최고 수준의 체스선수의 나이는 점차 어려지고 있다. 수천가지의 필수적인 패턴과 오프닝을 익히는 데에 예전에는 몇 년씩 걸리곤 했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자신의 책 “문외한(Outlier)”에서 말했듯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시간이 필요했다”(글래드웰의 이전작인 “눈깜빡임(Blink)”는 “체스의 비유(Chess Metaphors)”가 재창한 것보다 조금 더 창조적인 방법으로 인지과학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오늘날의 십대, 그리고 점차적으로는 10대 이전의 아이들은 디지털 복기 자료창고에 접속해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어린 나이의 두뇌가 가지는 장점을 이용함으로써 이 학습기간을 훨씬 줄일 수 있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 10대 그랜드마스터는 매우 희귀한 존재였고 거의 대부분 나중에 세계 챔피언이 되곤 했다. 1958년, 바비 피셔(Bobby Fischer)가 15세에 그랜드마스터가 된 기록은 1991년에야 깨졌다. 하지만 91년부터 지금까지 사이에 그 기록은 20번 갱신됐고, 현재 기록보유자는 2002년 거의 말도 안되보이는 12세의 나이에 최고 타이틀을 획득한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카르야킨(Sergey Karjakin)이다. 그는 지금 20세인데,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이기는 하지만 피셔가 동년배들 사이에서, 그리고 곧이어 다른 선수들 사이에서 유난히 두드러져보였던 것에 비해 카르야킨과 그의 동년배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훌륭한 체스 실력은 오랫동안 일반적인 지능의 척도로 여겨져 왔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 기분좋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 잘못된 견해이다. 하지만 일단 내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러스킨-거트만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해보자: “학습의 과정과 습득된 능력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분석적 기술을 이용해 비교연구를 하기에 체스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연구실과 같다”.

러스킨-거트만과 이유는 조금 다를지 모르겠지만, 위의 주장에 대해서는 나 또한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인공지능보다는 인간의 지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히는 데에 체스를 연구실로 사용하는 데에 훨씬 관심이 많다. 나의 2007년 저서, “어떻게 인생이 체스를 모방하는가(How Life Imitates Chess)”에 적었듯이 “체스는 인간의 정신세계 안에서 예술과 과학이 만나 경험을 통해 정제되고 발전되는 독특한 연결지점이다”. 우연찮게도 이 인용문이 들어 있는 장의 제목은 “은유 그 이상(More than a metaphor)”였다. 그 장의 목적은 체스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을 이용해 체스 이외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행하는 의사결정 과정을 이해하고 발전시자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인공적인 지능을 탐구하는 데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체스 컴퓨터들과 그렇게 많은 대국을 펼친 것도 이 탐구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인간 체스선수를 위협하고, 곧 추월한 그 결정적인 기간 동안에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나에겐 행운(어쩌면 불행)이었다.1994년 이전, 그리고 2004년 이후에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대결에 별 관심들이 없었다. 컴퓨터는 순식간에 너무 약한 상대에서 너무 강한 상대로 바꼈다. 하지만 그 사이 10년 동안 기계의 연산 능력과 그랜드 마스터의 직관과 지식 사이의 대결은 황홀한 것이었다(물론 우리는 기계의 연산 능력 뒤에는 “인간” 프로그래머들의 지혜가 숨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체스에서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가장 약한 부분에 기계가 강하고 또 반대로 기계가 가장 약한 부분에 사람이 강하다. 라스킨-거트만은 이를 모라벡의 파라독스(Moravec’s Paradox)으로 설명한다[역자주: 모라벡의 파라독스는 인공지능 연구에 있어 인간의 지능 중 논리와 계산 같은 이성적인 부분은 의외로 거의 계산 능력(computational power)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감각운동기능(sensorimotor skills)과 같은 동물적인 본능은 오히려 엄청난 양의 계산을 필요로 한다는 파라독스이다]. 여기에서 얻은 실험 아이디어가 있다. 사람이 컴퓨터와 대결하는 대신에 짝을 지어 체스를 두면 어떨까? 나의 아이디어는 1998년, 스페인 레옹에서 “고급 체스(advanced chess)”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었다. 각각의 선수는 자신이 선택한 체스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컴퓨터를 1대씩 사용해서 게임에 임했다. 목표는 인간과 기계의 능력을 조합해서 지금껏 아무도 본 적 없는 최고 수준의 체스 경기를 펼쳐 보는 것이었다.

이 특이한 경기 형태에 나름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세계 1위였던 불가리아 출신 베셀린 토팔로프(Veselin Topalov)와의 대국은 이상한 느낌으로 가득차 있었다. 게임 도중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편하기도 했다. 수백만개의 기보를 순식간에 검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미 모든 경우의 수가 잘 정리되어 있는 게임의 오프닝을 위해 보통의 게임때만큼 기억력을 쥐어짤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기력의 우위는 여전히 누가 언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느냐에 달려 있었다.

컴퓨터 파트너가 있어서 좋았던 점 또 하나는 결코 전술적인 실수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우리가 검토한 모든 수에 대해서 우리가 깜빡 놓쳤을지도 모르는 가능한 결과와 상대방의 응수를 보여줬다. 일단 이런 걱정을 덜고 나니까, 우리는 둘 다 전술적 계산에 시간을 소모하는 대신 전략적 차원의 생각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런 조건 아래서는 인간의 창의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인간과 컴퓨터의 좋은 점만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토팔로프와 내가 둔 게임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임은 한 수당 시간 제한을 둔 채 진행됐고, 따라서 반도체 파트너와 상의하라 시간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주목할만 했다. 이 게임에 1달 앞서 “보통”의 스피드 대국에서 나는 토팔로프를 4-0으로 물리쳤었다. “고급”체스 경기의 결과는 3-3 무승부였다. 전술적인 계산에서 내가 가졌던 우위가 컴퓨터에 의해 무력화된 것이다.

러스킨-거트만은 이 실험을 언급하지 않는데, 그가 다루는 주제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인 만큼 중대한 누락이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이 “고급”체스가 그 뒤로도 계속됐다는 것이다. 2005년에 온라인 체스 사이트인 Playchess.com에서 “프리스타일” 체스 토너먼트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누구든 다른 인간 선수 혹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팀을 이루어서 참가할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온라인 사이트들은 선수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속이는 것을 방지하거나 최소한 억제하기 위해서 “속임수 방지(anti-cheating)” 알고리즘을 이용하곤 한다(나는 매 수를 진단/분석하고 확률을 계산하는 이 속임수 방지 알고리즘들 역시 속임수로 사용되는 체스 프로그램들만큼이나 “지능적인”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상당액의 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몇몇 팀의 강한 그랜드마스터들이 컴퓨터 여러 대를 동시에 이용하는 팀을 짜서 토너먼트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결과가 예측가능해보였다. 인간과 컴퓨터가 결합한 팀에 가장 강력한 체스 프로그램을 물리쳤다. 딥 블루(Deep Blue)와 마찬가지로 체스만을 위해 만들어진 슈퍼컴퓨터 히드라(Hydra)마저 상대적으로 약한 랩탑을 이용하는 강한 실력의 인간 선수에게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인간의 전략적 사고와 컴퓨터의 전술적 정확도의 결합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은 토너먼트가 끝날 때 쯤 일어났다. 토너먼트의 승자는 최첨단 컴퓨터를 이용한 그랜드마스터가 아니라 3대의 컴퓨터를 동시에 사용한 두 명의 미국 아마츄어들이었다. 이들은 컴퓨터를 조작하고 판세를 깊이있게 들여다보도록 프로그램을 “훈련시키는” 기술로서 상대인 그랜드마스터가 가진 체스에 대한 더 높은 통찰력과 다른 선수들이 가졌던 더 많은 연산 능력(computational power)를 효과적으로 물리쳤다. 약한 인간 + 기계 + 우월한 방법론이 강한 컴퓨터 한 대보다 나았음은 물론이고 놀랍게도 강한 인간 + 기계 + 열등한 방법론보다도 나았던 것이다.

이 “프리스타일” 토너먼트의 결과는 “재능(talent)”이 오용되고 오해된 개념이라는 나의 믿음과 맞아떨어진다. 1985년 내가 사상 최연소 22세의 나이로 세계 챔피언이 되었을 때, 나에게는 성공의 비밀과 재능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기자들은 시실리언 방어(Sicillian Defense)에 대해 묻는 대신 내 식습관, 내 개인사, 내가 몇 수 앞까지나 읽는지, 그리고 몇 게임이나 복기할 수 있는지 등을 물어왔다.

내 대답이 그들에게 실망스러운 것이었음을 깨닫는데는 별로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식습관은 평이하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 내 기억력은 좋은 편이지만 첫 보기만 하면 뭐든지 기억하는 수준(photographic memory)은 아니다. 그랜드 마스터는 몇 수 앞까지 읽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러스킨-거트만이 위대한 쿠바 출신 챔피언 호세 라울 카파블랑카(José Raúl Capablanca)의 말로 알려진 대답을 잘 인용하고 있다: “딱 한 수, 최상의 한 수”(다른 사람의 말로 알려져있기도 하지만). 사실 이 대답이나 다른 답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 뭔가 깊이있어보이는 질문을 하려다가 실패한 문외한의 시도를 함축적으로 무시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한테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를 완주하는 동안 기어를 몇 번 바꿨냐고 묻는 것과 같달까.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대답, 즉 “판 위의 형세와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에 따라 다르다”는 답은 썩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내가 치룬 가장 성공적인 토너먼트 게임 중 하나로 기억되는 1999년 네덜란드 후고벤스(Hoogovens)에서의 경기에서 나는 15수 앞에서 이기는 수를 읽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나는 최종 공격을 위해 내 말을 엄청나게 희생했고, 스스로 퇴로를 잘랐다. 만약 내 계산이 틀렸다면 완패가 따논 당상인 게임이었다. 비록 내 직관이 맞아 떨어졌고 당시 내 상대(공교롭게도 또 토팔로프)가 압박감에 못이겨 방어책을 찾는 데 실패하기는 했지만, 게임이 끝나고 분석해보니 내가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경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둔 수보다 훨씬 간단하게 승리하는 방법이 있었다. 카파블랑카의 빈정댐은 차치하고서라도 인간이 두는 체스 게임, 그리고 나아가서 사람의 의사 결정에 있어서는 몇 개 안되는 수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 컴퓨터처럼 점점 더 깊게, 점점 더 많은 수를 체계적으로 내다보는 것보다 일반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사람마다 장기 기억력이나 공간시각능력과 같이 체스 선수들이 이용하는 인지능력에 차이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체스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연구실”이자 “독특한 연결지점”인 이유는 체스를 위해 활동이 요구되는 두뇌의 제기능이 매우 많다는 데에 있다. 뇌에 대한 연구가 실질적인 차원에서 종종 실패하는 것은 체스를 배우고 두는 과정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이나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재능이다. 몇 시간 동안 공부를 계속해도 새로운 지식을 계속해서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은 재능이다. 자신의 의가 셜정 과정과 결과를 분석해서 스스로를 잘 프로그램하면 마치 더 좋은 체스 프로그램이 같은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다른 프로그램보다 체스를 더 잘 두는 것과 같이 스스로의 결과물을 향상시킬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드웨어는 바꿀 수 없을 지 몰라도, 소프트웨어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것이다.

체스 컴퓨터들의 우위가 분명해지고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이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20세기의 위대한 두뇌들을 컴퓨터 체스에 매료시킨 바로 그 원래의 목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지도 모른다. 단순히 컴퓨터가 체스를 더 잘 두게 하는 문제 또한 그들이 풀고 싶어 했던 문제이고, 또 풀어 냈다. 하지만 다른 목표들도 있었다: 인간처럼 생각하면서 체스를 두는 프로그램, 혹은 심지어 인간처럼 체스를 배우는 프로그램. 지금 우리가 하고 있듯이 점점 더 빠른 하드웨어에서 돌아가는 점점 더 빠른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보다는 이런 목표들이 훨씬 더 결실있는 탐구의 대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지막 체스 비유(chess metaphor)는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혁신과 창의력을 버리고 판매가능한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데에만 멈췄는가에 대한 비유. 고대로부터 내려온, 인간 정신을 상징하는 게임을 할 수 있는 인공 지능을 만들겠다는 꿈은 버려졌다. 대신 매년 새로운 체스 프로그램이, 새로운 버전이 쏟아져 나온다. 전부 다 1960년대, 70년대에 개발된 수백만가지의 경우의 수 중 한 개의 수를 찾는 똑같은 프로그램상의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

기술은 넘쳐나지만 혁신은 부족인 현대 사회의 모든 물건과 마찬가지로, 체스 컴퓨터 또한 점진주의(incrementalism)와 시장의 수요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억지(brute-force) 계산력을 이용한 프로그램들이 체스를 제일 잘 두더라, 왜 다른 기술을 고민해? 이미 잘 작동하는 기술이 있는데 왜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 실험하는 데 돈을 낭비해? 과학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에 기겁을 해야 맞겠지만, 현실은 이것이 정상인 것으로 보인다. 가장 뛰어난 두뇌들은 진짜 공학이 아닌 금융 공학을 택해 버렸고, 그 결과는 양쪽 모두에 재앙이었다.

아마 체스는 이 시점에서 [인공지능 연구에] 적합한 게임이 아닌지도 모른다. 요즘 뜨는 건 포커다. 아마츄어 플레이어들이 종이 한 장에 규칙을 설명할 수 있는 복잡도의 카드 게임으로 백만장자가 되고 티비에 출연하는 꿈을 꾼다. 체스가 100% 정보가 공개된 게임이고 – 두 플레이어 모두 게임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 따라서 연산 능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임인데 반해서 포커에는 숨겨진 카드와 가변적인 위험이 존재하고 따라서 운, 블러핑, 위기 관리(risk management)와 같은 것들이 필수적이다.

포커에는 오직 인간 심리에만 바탕을 둔, 따라서 컴퓨터가 침투하기 어려운 어떤 면들이 존재할런지도 모른다. 컴퓨터로 매 핸드의 승률을 계산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일테다. 하지만 승률이 낮은 패를 들고도 높은 판돈을 거는 상대 플레이어에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런데 사실 포커에서도 컴퓨터들은 이미 발전하기 시작했다. 체커를 풀어버린 프로그램을 개발한 조나단 섀퍼(Jonathan Schaffer)가 이제는 포커로 공격대상을 바꿨고, 그가 만든 디지털 플레이어들은 점점 더 강한 인간 플레이어를 상대로 점점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것이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 가지는 함축적인 의미는 분명하다.

많은 프로 체스 선수들이 돈벌이가 더 잘 되는 포커를 플레이하며 소일하고 있는 작금의 현상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들이 혁신을 위해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가 즐기는 고등한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위기를 감수해야 하는지를 배우기에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가 위기를 감수하지 않고는 어떤 보상도 누릴 수 없다는 교훈을 얻기 위해 포커에 엄청 뛰어난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면, 뭐 그리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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